[승범태현]Beginning and end. Side, 안승범 - 上 검은방

2012.04.12 업로드. 

 







 그날 이후, 나이를 먹고 복수를 결심했을 때부터 매일 꿈을 꿨다. 이제는 정확하게 얼굴도 기억나지 않아 흐릿하게 보이는 어릴 적 그대로의 누나가 나를 보며 슬픈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언제나 꾸던 꿈에서 누나는 나를 볼 때마다 이상하게도 무슨 말을 전하려고 하는지 입을 뻥긋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나의 귓가에는 아무소리도 캐치되지 않았다. 이제는 누나의 목소리도 기억나지 않는 모양이다.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에는 알아들어보려고 노력해봤지만, 금방 헛수고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 누나가 뭐라고 말하는지 아예 관심을 가지려고도 하지 않았다. 난 그저 누나에게 일방적으로 의문을 던졌다. 자기 자신을 위로하고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 누나를 위한다는 겉좋은 모습으로. 사실은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기위한 방편으로 내세우고.

 

 “아팠어…?”

 

 누나는 그저 입을 뻥긋거렸다.

 

 “미웠지?”

 

 되돌아오는 말은 없었다.

 

 “걱정 마. 이제 곧 이니까.”

 

 허공에 대고 말을 하는 기분이었다.

 

 “조만간 만날지도 모르겠다.”

 

 기다려. 여러 명 데려갈게. 자기 자신에게 다짐하듯 중얼거리며 말을 내뱉자마자 누나의 얼굴에 약간의 이상반응이 생긴 듯 흐릿한 얼굴이 처음과 다르게 일그러져있었다. 뭔가 언짢은 건가? 누나에게 왜 그래? 하며 손을 뻗으려는 순간 영상에 톡하고 방울방울 검은 물감이 풀어지듯 가려지더니 흠칫하고 몸을 떨었다.

 

 

 오래되어 삐걱하고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내는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막 잠에서 깨어나 수면위에 떠있는듯 몽롱하고 두둥실 뜨는 묘한 기분으로 벽에서 조용히 일정하게 째깍 이는 물체를 바라봤다. 불이 꺼져있어 잘 보이지 않았다. 제길. 귀찮아. 잇새로 조그맣게 욕을 내뱉으며 물을 머금은 스펀지처럼 무거운 몸을 일으켜 벽으로 다가갔다. 어둠속에서 스위치를 더듬거려 찾다가 손에 플라스틱의 느낌의 무언가를 찾아내고, 이내 힘을 줘 달깍하고 눌렀다. 팟하고 갑자기 켜지는 전등에 눈이 부셔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 자리에서 그대로 눈이 빛에 익숙해질 때까지 서있었다. 그러다 주변 사물이 정상적으로 시야에 들어오자 시간을 확인했다. 2시 45분. 아직 이른 시간에 짜증이 솟아오르는걸 참으며 달력에 눈을 돌리자 어느새 하루가 지나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준비를 한다.

 

 

 

 

 처음으로 그를 만났을 때의 느낌은 얼빵하다. 라는 느낌이었다. 허강민이 모든 것을 준비하고 나름대로의 스페셜리스트들을 초대할 때, 나는 그를 유인해 기절시키고, 같은 방에 납치된척함으로써 그에게 다가갔다. 그에게 딱히 개인적으로 나쁜 감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담겼다면 동정, 그리고 연민. 어쩌면 이 사람도 내가 죽이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다 허강민같은 작자한테 걸린 걸까 이 사람은. 물론 대충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렇게 나쁜 행동을 할 만한 인물로 보이지는 않았다. 이 녀석은 영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쯧. 그런 놈한테서 원망을 사다니, 어떻게 해서 살아남아도 허강민이 살아있는 이상 앞으로 골치좀 아플 거다. 뭐, 내 알바 아니다마는.

 

 나는 아무렇지 않게 피해자를 연기하며 함께 방을 탈출해갔다. 어쩔 땐 호응해주고, 어쩔 땐 부딪히면서. 솔직히 그와 강하고 깊게 연결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내가 해야 할 복수만으로도 속이 부글부글 끓고 진정이 되지 않는 사람 이였으니까. 어차피 내 할일이 끝나면 만날 일도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계획된 것을 함께 진행하면서 그에게서 간간히 드러나는 성품에는 기분 나쁘다는 느낌보다는 안도감이 느껴졌다. 왠지 모를 편안함에 나답지 않은 행동을 몇 번 한 것도 사실이다.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2층의 웨딩홀에서 진심으로 고통을 호소해버린것은. 그가 뿜어내는 그 감정에 매료되어 나도 아차, 하는 사이에 입을 움직이고 있었다. 감정을 내뱉었다. 가슴속에 맺힌 응어리를 뱉어냈다. 그가 어떻게 생각할까. 지금 이곳에서 살인을 저지른 사람, 그리고 계속해서 살인을 해야 하는 사람을 구원해줄수 있는 거야, 당신은?

 

 “여러 가지 생각이 있어서 순경이 된 거겠지? 말해봐. 죄는 어떻게 해야 사라지는 거야? 증오는 어떻게 하면 사라지지?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되는 거냐고. 그런 자를 손대고 만 나는, 어떻게 하면 되는 거냐고…!”

 

 나도 모르게 격한 충돌이 일어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울컥, 하고 솟아오르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나라고 해서 사람을 죽일 때 아무런 감정을 못느끼는것은 아니다. 아무리 원망스럽고, 밉고, 저주하고, 죽이고싶어했다고 해도 어떤 한 인간의 목숨을 빼앗아간다는것은 쉬운 행위가 아니고, 그걸 알면서도 나는 복수라는 이름의 보복으로 살인의 이유를 이미 오래전에 눈앞에서 억울하게 목숨이 사라져버린 누나에게 밀어 넘겨, 내가 편해지는 방법을 위해 선을 넘어 저질러버렸다. 알고 있다.

 

 하지만 당신이라면, 몇 번이고 자신의 죄를 마주보며 후회한 당신이라면 해결책을 줄지도 모른다. 라고 생각했지만 모른다고 대답한 것에는 조금 실망했다. 실망했는데도, 왜인지 살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눈빛에 왠지 모를 신뢰감이 생긴다. 어째 서지…? 동화되어가는 감각에 마음이 흔들렸다. 그가 열심히 무엇을 할 때마다 시선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그래도 눈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지, 다행히 들킨 것 같지는 않았다. 희미한 혼란이 굳게 닫힌 문에 똑똑, 하고 노크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내가 그때 민지은을 죽이지 못했던 것은, 류태현이 나에게 그런 혼란을 안겨준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백건영, 서현진과 함께 숨어있던 민지은을 발견하는 순간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억지로 눌러 앉혔다. 백건영이나 서현진을 보고 화가 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결론적으로 민지은. 민지은만 없었다면. 그때 아무 말도 하지않아줬다면 누나는 그런 최후를 맞이할 이유도 없었을 텐데….

 

 누나. 하나뿐인 나의 누이. 안연경. 이라는 단어가 머리에 떠오르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폭발하듯 몸의 신경을 타고 올라와 머릿속을 헤집었다. 지금 당장 뛰쳐나가 저것들의 목을 움켜잡고 부러트려버리고 싶었다. 죽지않을만큼만, 한계치까지 아슬아슬하게 고통을 주도록 고문해 살려달라고, 미안하다고 추하게 울부짖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옆에서 침착하게 다독이고 응원하며 나아가는 그녀석이 보일 때마다 파하, 하고 김이 새듯이 감정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서 참는 것뿐이라고…. 다짐을 했다. 하지만 어딘가 한구석에서는 알고 있었다. 기묘한 감정을.

 

 톱니바퀴를 멈추러 류태현과 서현진이 옆의 방으로 이동했을 때가 기회였다. 류태현이 오기 전에 연습했던 대로 먼저 누나에게 손을 댄 빌어먹을 자식에게 죽음을 선사하기로 결심했다. 능숙하게 복도에 인기척이 있다는 둥의 말을 내뱉었다. 가식적인 표정과 행동. 그것을 서슴없이 해내는 자기 자신의 모습에 구역질이 났다.

 

 내 말이라면 의심조차 하지 않는 백건영의 모습에 조소 섞인 비웃음과 비아냥이 튀어나올 뻔했다. 자기가 뭐라도 되는 듯이 힘을 휘두를 땐 언제고, 또 이렇게 달라붙는지…. 재수없는자식. 너부터 보내주마. 백건영이 304호로 들어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306호를 통해 급하게 따라갔다. 이 개자식. 백건영이 알아채고 뒤돌아보기 전에 재빠르게 급소를 찌르자, 고통으로 눈을 크게 부릅뜨고 소리조차 지르지못하고 조그마한 신음을 내뱉던 백건영이 약하게 전율하던 몸이 이내 힘을 잃고 인형처럼 쓰러졌다.

힘없이 늘어진 모습과 묻어나는 피를 보고 확신했다. 죽었다.

 

 사실을 새삼스레 자각하니 살의가 함께 억눌렸던 분노가 더욱 더 끓어올랐다. 꼭 이렇게 하나하나 죽일게 아니라, 이번 기회에 모두를…!

 

 류태현도?

 

 모두, 라는 생각이 들자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동시에 그는… 꼭 죽이지 않아도 되잖아? 라는 자신도 모르게 부정하려는 마음이 확실하게 보였다. 혼란스럽다.

 

 제길. 그는 변수다. 함부로 손대서는 안 될 사람이다. 그는 온전히 허강민과 해결을 봐야할 사람…. 과연 허강민이 말한 대로 그리 대단한지 호기심이 일었다. 여흥을 즐기려면 일단 완벽한 환경을 조성해야한다. 의심받지않기위해서는 알리바이를 만들어 시선을 돌려야한다. 혼란스러움을 수습하며 방문에 실을 걸고 급하게 뛰어가 민지은에게 라이트스틱을 달라고 하며 말을 걸었다. 어리둥절하며 민지은이 라이트스틱을 넘겨주려할때 누군가가 밀어낸 듯이 고의적으로 넘어졌다. 동시에 미리 엘리베이터에 걸어놓은 실을 급하게 잡아당겼다. 민지은은 놀란 듯 당황해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각지대를 이용해 은밀히 조종 장치로 엘리베이터를 이동시키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후 달려온 두 명에게 민지은이 왜곡되고 꾸며진 일을 류태현과 서현진에게 설명했다. 그것을 들으며 왜 자신의 말을 무시했냐고 하던 그가 흠칫하며 말했다.

 

 “건영씨는…?”

 

 당황한 표정으로 백건영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며 마음속으로는 골로 보내줬지. 하며 비웃었다. 이봐, 류태현. 사람을 쉽게 신뢰하지말도록해. 계획은 없다지만, 수틀리면 너도 언제 나에게 죽어버릴지 모르니까 말이야.

 

 혼란을 겪고서도 애써 부정하며 꽤나 여유로운 생각을 하며 다음행동을 개시했다.

 

 

 

 

 허무했다. 무언가를 믿어 의심치 않을 때 그 믿음을 송두리채로 흔들어놓는것, 그리고 그것이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라는 걸 알게 되는 것만으로 온 몸에 힘이 빠진다.

 

 원망하던 것, 복수의 대상중 하나가 자신의 복수를 지원하고, 부추긴것이란걸 깨달아버리자 자신에 대한 회의감이 밀물처럼 밀려들어와 다른 것을 휩쓸어가버렸다.

 

 회의감(懷疑感)이 이윽고 자괴(自壞)로 이어진다. 밀려오는 공허함에 화를 낼 힘도, 무언가 반박할 힘조차 남지 않고 쓸어가버린다. 너무… 너무도 힘이 들어서… 스스로 일어나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아서. 한없이 무력해진다. 결국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오십보백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나에게는 벅찬 일이였을지도 모른다.

 

 불타는 건물 속에서 그런 생각들을 했다.

 

 이대로 모든 업보와 함께 스러져 사라져도 아무렇지 않다고. 오히려 후련하다고. 이제 다 끝이라고, 그만 쉬어도 된다고….

 

 쾅!

 

 화염에 휩싸였을 바쪽에서 부서질 듯이 열리는 문소리와 함께 인기척이 느껴졌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이미 모두들 나갔을 거라 생각했다. 무언가가 무너지기 시작한 걸까. 라는 생각을 하며 소리가 난 쪽을 돌아봤다. 그런데… 그가, 나타났다.

 

 잠시 동안 내가 환각을 보고 환청을 듣고 있는 것으로 의심이 갔다. 말도 안 되지 않은가. 그저 범죄자 하나가 있는 불타는 건물에 죽어 마땅한 죄인을 구하러 불속을 헤치고 들어오는 교통순경이라니…. 멍하게 시선을 옮기자 강한 의지가 서린 눈동자가 맞이해왔다. 이건… 그때의 그 눈이다. 살고 싶다고 말했을 때의 빛, 마치 누나가 생각나는….

 

 퍼뜩 드는 정신에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 대체 뭐야?”

 “데려가려고 왔습니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평온한 어조로 나를 데리러 왔단다. 어이가 없어서 오히려 웃음이 날 지경이다. 그의 지나친 무모함에 오히려 그것은 분노로 탈바꿈했다. 애써 참고 내보내줬더니…! 뭐라고?!

 

 “어딜 데려가? 저승길 길동무라도 되어주겠다는거야!”

 

 그래. 같이 동반자살이라도 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빨리 돌아가!!

 

 내 말은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이 류태현은 내 쪽으로 한발자국씩 내딛기 시작했다. 두려움도 없이 거침없이 다가오는 행동에 오히려 내 쪽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죽는 건 나 혼자로 족해… 너는 살고 싶다고 말했잖아? 도대체 너에게 이곳에 와야 할 이유가 있냐는 말이야….

 

 “오지 마! 당장 돌아가. 꺼지라고!”

 

 무언가에 홀린 듯이 다가오는 류태현의 모습에 당황해 옥상에서 주웠던 그의 권총을 들고 류태현을 향해 위협사격을 했다. 자신의 몸을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간 총알에 고통을 느끼고 멈출 만도 한데, 멈추기는커녕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뭐야…? 권총을 쥔 손이 전율한다.

 

 “어떻게 된 거 아냐? 아니면 자살하고 싶은 거야! 돌아가. 여기서 나가!!”

 

 내 말에도 아랑곳 않고 꿋꿋이 다시 한발자국을 내딛는 모습에 몸의 떨림이 목소리까지 침식해온다.

 

 “대체…뭐하자는…. 어쩔 생각으로 돌아왔어…?”

 “…당신을 구하러 왔습니다.”

 

 아무리 고래고래 외쳐도 대답하지 않던 그가 한참의 침묵 끝에 조용히 대답했다. 고요하게 돌아온 답에 반대로 울컥하는 마음이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족족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미쳤군…정말로 죽고 싶어?”

 “그건 내가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입니다!”

 “..뭐?”

 

 멍한 시선으로 류태현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 얼굴은 평소와 다르게 격한 감정을 담고 일그러져있었다. …진심으로 나에게 분노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과거에 얽매여 사람을 죽이고. 이용당한채로… 이렇게 과거와 함께 불타버려도 좋습니까?”

 

 머리에서는 차분하게 그렇다고 대답하라고 하고 있는데,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알 수 없는 감정이 몸을 휘젓고 있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뜨거워져온다…

 

 “정말 이걸로 좋습니까?”

 

 이걸로… 좋은가? 장기짝처럼 이용만 당한 채, 다른 사람의 기억에도 남지 못하고 이렇게 혼자 스러져도 좋은가…?

 쉴 새 없이 의문만이 두서없이 떠올라 혼잡해지는 머릿속으로도 똑똑히 귓가에 박히는 목소리는 말을 계속해 이어나갔다.

 

 “이야기했었죠. 나도 죄를 지었습니다…!”

 “…….”

 “하지만, 나는 살고 싶습니다!”

 

 죄를 짓고도, 살아가도 괜찮은 건가?

 이런 나도, 살아가도 괜찮은 건가…?

 

 “말해보세요. 이대로 좋습니까? 이런 개죽음이 진짜 원하는 일입니까!”

 

 점점 격해지는 말에도 아무 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거듭되는 의문과 가속되는 혼란에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말, 죽음을 원합니까!!”

 

 죽음을 원하냐고? 정말로 죽고싶냐고…?

 …그럴 리가 없잖아. 나라고, 죽고싶을리가 없잖아!!

 

 심장이 두근거린다. 이것이야말로 살고 싶다고 울부짖는 증거…. 추한 자신의 모습을 숭고하게 바꾸어 사라지기를 원해 외면했던 진심을 사건의 진상을 밝힌 저 어벙한 순경이, 나조차 의식하려 하지 않은 진심을 꿰뚫어냈다. 해답을 얻었다. 그래,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한다. 나는 주위에서 타오르는 불꽃같은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눈을 감고 스스로에게 들려주듯 조용히 진심을 내뱉었다.

 

─…살고 싶어.

 

 “당신은 살아서 여길 나갈 겁니다!”

 

 굳이 인정하지 않으려던 것을 이렇게 간단히 인식하니, 조여오던 심장이 평소의 페이스를 되찾고 복잡해진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다. 살고 싶다. 하지만……. 중요한건 이미 깨달았다고 해도, 되돌리기에 늦었다는 거다.

 

 “…이미 늦었어. 온통 불길이라고!”

 

 자신이 처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제 3자의 일을 보는 듯 동조는 해도 감흥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이미 체념했기 때문이겠지.

나를 구하러 온 그에게 조금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 눈빛으로 그리자, 그는 여전히 조금도 식지 않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런 소리는 집어치워!!”

 

 어떻게든 살아 나가보겠다고,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류태현은 이내 무언가를 찾아내고 한곳으로 달려갔다. 그의 동선을 따라 눈을 돌린곳은, 창살이 박혀있는 창문이었다. 설마..!

 

 “폭발로 약해져있어…!”

 “어쩔 생각이야…! 여긴 5층이라고!!”

 “…이대로 뛰어내릴 겁니다!!”

 

 몇 번이고 쇠창살을 발로 차던 그는, 어느 정도 사람이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몸에서 핏기가 빠져나가는 것 같다.

 

 “정말 제정신이 아니야..! 그렇게 해서 불타는 건물을 탈출한다고 해도, 이정도 높이에서 떨어지면 죽는 건 마찬가..!!”

 

 시끄럽다는 듯 갑작스레 멱살을 잡아채는 손길에 몸이 이끌려갔다. 어? 어어..? 아무생각없이 치켜뜬 눈에서는 구름낀 하늘이 보였다. 몸을 세차게 때리는 바람이 느껴졌다. 아, 그래. 나는 떨어지고 있는 건가. 내 몸을 감싸오는 작은 체구가 느껴진다. 이런 상황에서도 보호하겠다는 거..!

 

 어이없다고 느끼면서도 그 행동에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그 몸을 붙잡았다. 그런 내 행동에 반응하듯이 팔에 좀 더 힘이 들어왔다.

 

 “..살 수 있습니다.”

 

 안심시키듯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귓가에 들림과 동시에 몸에 찢어져나가는듯한 충격이 느껴졌다. 고통에 머리가 새하얘지고 비명조차 지를 수 없을 정도였다. 내장이 비명을 지르며 액체를 거꾸로 방출해낼듯 울렁였다. 이내 뜨끈한 피가 몸 밖으로 새어나오는 게 눈앞에 생생하게 보였다. 몸에서 역류한 피가 입 밖으로 터져 나온다. 쿨럭이며 고통으로 혼미한 정신으로 앞의 류태현의 상태를 보았다. 나보다 훨씬 심해보이는 상처에 얼굴이 찌푸려지고 얼굴의 피가 모두 밖으로 흘러나온 것처럼 무뎌진다. 훨씬 고통스러웠을 텐데도 약해지지 않은 팔의 힘이 포근감을 안겨준다. 흐려지는 정신 속에서 옛 사진을 발견해냈다.

 

 ...색 바랜 누나의 마지막 모습이 생각났다.

 

 VIP룸에서 가까운 문의 옆에 나를 몰래 숨겨놓은 누나가, 불안해하는 나를 위해 한번 꼭 안아주고 시선을 마주하며 했던 말이 떠오른다.

 

 “...괜찮아. 우리는 살 수 있을 테니까.”

 

 기억나지 않던 누나의 모습도, 목소리도 알싸한 혈향과 함께 붉게 떠오른다. 만약 다시 한 번 꿈을 꾼다면,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이야기할 수 있을까?

 

 평소 두려움에 잠들지 못하는 것과 다르게, 고통스럽지만 평온한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 누나의 모습이 떠오르기를 기다리면서. 꼭 마음을 전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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