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범태현] 검은방

언제 다시 쓸지 모르니까 일단.....30분간...끄적...








 그 이후 승아의 입에선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손을 붙잡고 울었었다. 내 사소한 이기심이 다른 사람들을, 승아를, 그 아이를, 허강민을 상처 입혔다. 단순한 내 이기심 때문에. 한심하게도 멈추지 않는 눈물에 목구멍을 틀어막으며 신음하는 나를 쓰다듬는 그녀의 눈에는 여전히 따뜻한 온기가 머물러있었다.

 

 그 눈을 바라본 순간, 나는 그녀를 보고 깨달았다. 아아, 그녀는 나의 메시아다. 어두운 밤하늘에서도 빛나는 북극성처럼 그녀는 밝다. 그녀를 궁지로 밀어 넣은 나마저 구원하고 있다. 그때부터 내안에서 승아를 향한 감정이 미묘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그것은 이미 사랑에서 변질된 죄책감. 그때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고 승아의 손을 잡으며 다짐했다. 절대로 그녀를 다치게 하지 않겠다고, 그리고 그녀가 원하는 것처럼 반드시 살아남겠다고. 자애로운 빛을 몸에 담으며 눈을 감았다.

 

 

*



 

 실종되었던 허강민은 다시 나를 찾아왔고, 또 무의미한 죽음이 시작되었다. 난 눈앞에서 많은 사람들의 눈에서 빛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속죄의 굴레가 구르면 구를수록 심장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어둠이 자신을 좀먹는 것만 같아서, 미친 듯이 달아나면서도 깊은 호기심을 느꼈다. 그래, 나는 어둠에, 죽음에 매료되고 있었다.

 

 그렇게 어두운 것을 무서워하면서도 허강민, 그 작자 앞에만 서면 마치 누군가가 숨결을 불어넣은 것처럼 두려움이 사라지고 빈자리를 침착함이 채웠다. 그와 동시에 그를 볼 때마다 미칠 듯한 고통이 나를 찔렀다. 목을 조르는 압박감. 나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의의 편 인양 히어로의 가면을 뒤집어쓰고 가식적으로 어둠속으로 달려들었다. 그것은 일종의 자살기도였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나를 죽여, 나를 죽이고 모든 것을 끝내. 이 지긋지긋한 악몽을.

 

  그 절규를 보고 허강민은 말했었다. 죽여? 너를? 안 돼. 그렇게 널 쉽게 놓아줄순없지. 끝까지 발버둥 쳐라, 류태현. 비릿하게 웃는 그것은 나에게서 태어난 것이었다. 나의 위선적인 가면에서 잉태하고, 나의 비겁함에서 자라난 악마. 첫 번째, 두 번째 만남이 지나고 세 번째 차례였다. 나는 수많은 시체들이 생겨나고 그것에 점차 무뎌지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나와 만났고 떠나갔다. 더 이상 그들을 향한 감정을 가질 수가 없었다. 나는 죄인이다, 절대 풀 수 없는 족쇄를 찬 죄인. 그럼에도 나는 또다시 나를 보호하기 위해 감정을 죽였다. 그들에게 남는 감정은 미안함과 몸 깊숙한 곳에 가라앉아있는 죄책감에 약간의 무게를 더 얹는, 단지 그것뿐이었다.

 

 나는 냉정해졌다. 나는 나를 지켜야했다. 최후의 최후에 남아있는 나의 아이와 자멸하기 위해서. 그리나 결국 그 마지막에도 나는 허강민을 없애지 못했고, 과거에 백선교의 본거지였던 건물은 불타올랐다. 그 뜨거운 불을 보고 있자니, 아직 위에 남아있던 그가 떠올랐다.

 

 차가운 복수를 불같은 성격으로 감추고 있던 눈, 누나를 죽인 원흉을 없애고 텅 비어버린듯한 눈. 그것은 허강민과 닮아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죄책감과 두려움에 비명을 지르는 아이가 있었다. 그 공포에 휩싸인 눈, 그것은 마치 ……나와 같았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소리치는 다른 이들의 말을 뒤로하고 불나방처럼 불타는 건물 으로 뛰어들었다. 타오르는 불꽃에 눈이 따가웠지만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목구멍을 치고 올라오는 감각이 더욱 고통스러웠다. 쉬지 않고 달음박질쳐 허덕이며 도착한 방의 문을 발로 차듯 열었을 때, 그는 여전히 허망한 듯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닮았다. 그 눈동자에 심장이 움직였다. 홀린 듯이 발이 움직였다. 그가 나를 향해 지르는 고함도, 스쳐지나가는 위협사격도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그 눈 안에서 울고 있는 한 아이만이 보였을 뿐이다. 두려움에 눈을 감으려는 그 아이를 향해, 나도 모르게 입이 움직였다.

 

 “과거에 얽매여 사람을 죽이고. 이용당한채로이렇게 과거와 함께 불타버려도 좋습니까? 정말 이걸로 좋습니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막다른 절벽에 발을 딛고 있는 그에게는 모진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얼핏 들었지만, 이미 튀어나오기 시작한 단어들은 통제권을 잃고 툭툭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야기했었죠. 나도 죄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살고 싶습니다!”

 “…….”

 “말해보세요. 이대로 좋습니까? 이런 개죽음이 진짜 원하는 일입니까!”

 

 주변에서 튀는 불똥이 머릿속까지 옮겨간 건지, 차갑게 식어있던 마음이 뜨겁게 튀어 올랐다. 문을 닫고 귀를 막아버린 그에게 나는 비명과도 같은 분노를 내뱉었다. 점점 격해지는 감정에도 그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말, 죽음을 원합니까!!”

 

 그것은 나 자신을 향한 말이었다. 나는 죄인이다. 그것은 평생 지워지지 않을 낙인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나라도 살고 싶다. 눈물이 나올 듯 눈가가 아렸지만 그것은 주위의 열기에 메말랐다. 나는 그저 고개를 숙이며 뜨거움을 삭였다. 그때, 마지 속삭이듯 작게 그의 입에서 말이 튀어나왔다.

 

 “살고 싶어.”

 

 눈이 뜨인 것 같았다. 무기력함 안에서 피어오르는 뜨거운 불꽃, 그것은 생의 감각이었다. 그래, 우리는 살아야만 한다. 그제야 주위 풍경이 새삼스럽게 나에게 다가왔다. 뒤에서 큰소리가 들렸다. 문밖은 막힌 건가. 이미 촉박한 시간에 어디로 나가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운 귓가에 한숨을 내뱉듯이 출구가 없다고 하는 그의 말에 나는 오기가 차올랐다. 약해진 창살을 부수고, 살고 싶다고 내뱉은 그를 붙잡고 뛰어내렸다. 5층의 높이에 바람이 온몸을 쳐댔지만 눈을 감고 그를 끌어안았다.

 

 “살 수 있습니다.”

 

 꼭 살아남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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