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범태현] Beginning and end. Side.류태현 검은방

2012.02.05.
적힌날짜는 안승범시점보다 빨랐는데 옮기기를 잘못했다...땀땀








 그와 처음만났던 사건. 그사건속에서 나는 조금씩 깨달아갔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아무것도 모른채로 편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무엇이든 시작을 했다면 끝을 내야한다. 그리고 끝을 내야할 사람은 나라는것도 알고있었다.그런 나였기에, 그가 모든것을 밝히고 혼자 멀어져갔을때 더더욱 그의 손을 놓아야했고, 다가서지 말아야했다. 이어질수 없는 마음이라면 처음부터 시작하지 말았어야했다. 이렇게 후회하게 될것이였다면… 그를 만나지 말았어야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를 구한것은 후회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는 그를 구함으로서 나도 나 자신에게 스스로 면죄부를 준걸테니까. 그를 구한것에는 그 이상, 그 이하의 감정따위는 없다. …없을것이다.

 

 어렴풋하게 마음속에서 고개를 쳐들기 시작하는 감정을 의식하며, 손에 힘을 주며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일단 이곳에서 승아를 데리고 탈출하자. 그 후에 생각해도 늦지않을것이다. 아이러니한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에게 자문자답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강성중이란놈은 도대체…. 가스에 기절해 띵한 머리로 주변을 휙휙 둘러보기를 시작했다.

 


[승범태현] Beginning and end. Side.류태현 - Written by. 올백본드

 


 마지막 사건이 끝난후, 나는 승아를 만나러 갔다. 승아는 나를 만나려 하지 않았다. 무너지는 건물에서 도망치듯 탈출할때, 몽롱한 정신으로 그녀에게 했던말이 그녀에게 또다른 짐이 되어버린걸까. 하지만 아직, 승아에게 나의 마지막 마음을…. 이제는 완전히 각성해버려 마음속에서 정말 중요해져버린 마음을 전해야했다. 그 후에도 몇번씩 승아의 병실을 찾아갔지만, 번번히 거절당하는것을 조금은 안타깝게 보던 무열선배… 아니, …형이 승아를 찾아가 무슨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번쯤은 만나달라고 권유해 이렇게 힘들게 만날수 있었다. 오랜만에 본 승아는 그동안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는지 편안해보이는 표정으로 창가의 침대에 앉아 손을 곱게 이불위에 올려놓고 창 밖의 풍경을 감상하듯이 내다보고있었다. 나는 아무말도 하지않고 의자를 침대의 옆에 옮겨 앉았다.

 

 내가 의자에 앉자 승아가 창 밖의 풍경을 감상하던 시선을 나에게로 돌렸다. 마주친 승아의 표정은 편안하고 온화한 표정이였지만, 눈동자에는 무언가 큰 일을 결심한듯한 결의에 찬 빛으로 일렁여 무슨말이라도 걸어보려고 입을 뗀 상태에서 할말을 잃었다. 예상치 못한 눈빛이다. 한참동안 이어지는 침묵에 순간적으로 타격을 먹은것같이 멍한 정신을 급하게 수습했을때, 승아가 입을 열었다.

 

 "…태현아. 나, 그동안 계속 생각을 해봤어."
 "……응."

 

 나도 그래. 라고 말해주고 싶은것을 침묵했다. 그녀가 무언가 더 하고싶은 말이 있어보였다.

 

 " 긍정적으로도 생각해보고, 이기적으로 생각도 해보려했어. 하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결국 답은 한가지의 선택지로 내달리게 되는 자신을 막기가 힘들어. 참고, 참아도… 이것만은 확실하게 해야할것같아. 그래서, 이번에는 말하려고해. "

 " …응. 말해. "

 

 사실은 승아가 무슨말을 할건지 대충 짐작이 가서, 듣고싶지 않았다. 귀를 틀어막고, 눈을 가리고 아무것도 모른척하고 그녀와 함께 지내고싶다. 하지만 승아가 꺼내지 않았다면 언젠가는 내쪽에서 꺼내게 될지도 모르는 말이란것을 느끼고있었기에 그녀에게 애써 태연하게 발언권을 내밀었다. 그리고 생각은 그대로. 적중했다.

 

 " …여기서 우리는, 그만 멈추는게 좋을것같아. "

 

 딩, 하고 다시 한 번 더 멍해진다. 처음부터 헤어질것을 각오하고 찾아왔건만… 느끼고있었건만, 역시 상상과 직접 그 선언을 받는것은 엄연히 달랐다. 심장이 조여와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고통스럽다. 슬프다. 하지만 난 승아에게 차여도 할말이 없었다. 내가 그녀를 지켜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무지한 나의 오만이였다. 지켜지고 구원받았던건은 나였고,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그녀에게 큰 짐을 지어주고 상처입혔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승아가 있는데도…….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그의 모습에 얼굴에 살짝 열이 오르는것 같아 고개를 푹 숙였다. 승아는 이미 이번 사건에서 어렴풋하게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를 보는 시선에 어떤 감정이 담겨있는지. 그에게 품고있는 마음이 어떠한것인지.

 

 "태현아."
 "……."

 

 그럼에도 나를 바라보는 승아의 눈에는 너무나도 따스하고 부드러운 빛이 담겨있고, 목소리에서는 나를 미워하거나 싫어하기보다는 좋아하고 사랑해주는 감정이 묻어나와 나도 모르게 목이 메여왔다. 승아는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난 아직도 니가 좋아. 누구보다도."
 "승…."
 "하지만."

 

 단호하게 말하는 승아의 말에 나도 모르게 승아의 이름을 부르려했지만, 냉정하게 가로채였다. 그녀는 강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다 이내 살포시 눈꼬리를 부드럽게, 화사하게 접어보이며 말했다.

 

 "난 태현이가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 …아. "

 

 승아는 나와 다르다. 아무것도 모름에도 내 손에 닿는 범위에 있는 사람들만이라도 지키고싶다, 살아가고싶다는 마음으로 살던 나와는 다르게, 모든것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말하지 않고, 그것을 스스로의 몸 안에 품고 나아간다. 그렇기에 위태하고, 연약하지만 강하다.

오랫동안 이어져온 연인의 관계는 직접 말하지 않아도 무슨 뜻인지 이해를 할수있도록 만들어주었다. 역시, 알고있었구나. 나를 생각하여 말해주는 승아의 말에 눈가가 아려오기 시작한다. 그동안 나에 의해서 고통받아왔던건 너였을텐데, 어째서 이렇게 나를 위해주는거야. 뜨거워…. 차마 흘리지 못했던 눈물이 쏟아져 내릴것만 같아 입을 다물었다. 아프면 울어도 되는데. 어째서인지 그녀의 앞에서만은 울고싶지 않았다. 그저 꾹 참아내는수밖에.

 

 입을 굳게 다물고 의자에 앉아 무릎에 올려놓은 두손에 시선을 고정하며 감정을 사그려뜨리고 있을때, 그녀가 살포시 손을 들어올려 쓰다듬듯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문득 옛날의 기억이 떠올라 다시 한번 울컥하고 치솟는 감정을 씁쓸하게 곱씹는다. 이것도 엄연히 나의 행동의 댓가다. 그런 생각을 하고있을때 승아는 부드럽게 머리를 어루만지던 손을 내려 나의 오른쪽의 의수로 가져갔다. 순간적으로 흠칫, 하고 몸이 굳었지만 승아가 나쁜짓을 하지 않을것이란걸 알기때문에 곧 몸의 근육이 이완되는 것 같았다. 승아가 오른쪽 의수를 부드럽게 쓰다듬는것이 눈에 비추어졌지만 감각은 느낄수가 없었다. 당연하지만.

 

 " 여기… 아프지? "
 " ……응? 아, 아니. 괜찮아. "

 

 그래. 괜찮다. 이젠 없어져버려 사용하지 못하는 오른손도, 그리고 일정하게, 그리고 점점 강하게 찾아오는 환상통도 아무렇지 않다고 느껴질정도로 익숙해지고있다. 이것이 내가 지은 죄의 댓가이기에, 용서받을수 없는 행동에 대한 처벌이기에 달게 받을수있다. 하지만 가끔씩 찾아오는 악몽에는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던 세계에서 … 함께 걸어가는 세 형제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져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버린다. 내가 파괴해버린, 선을 넘게 유도해버린 그들의 모습과 그들의 모습이 겹쳐져 내가 지어버린 죄의 크기가 얼마나 큰것인지 다시 한번 새삼스럽게 깨달아버린다. 나는 그럴때마다 미안해요. 죄송합니다. 대답없는 상대에게 끝없는 사죄를 하며 울부짖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간절하게 사람의 체온을 원했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 그런일을 해줄사람은 옆에 있지 않았다.

 

 끝없이 습격해오는 악몽의 가운데에서 허우적거리는듯한 나의 모습을 보며 그녀는 더이상은 빠져들지못하도록 구원하듯이 왼손을 잡아왔다. 따뜻한 사람의 체온이 느껴졌다.

 

 " 마지막으로 부탁이 하나 있어. 태현아. "
 " …응? 말해. "

 

 무슨 부탁? 숙이고있던 고개를 들어 승아를 쳐다봤다. 승아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환하고도 밝은 미소로 나를 보며 웃어주고있었다.

 

 " 한번만… 한번만 안아줘. "
 " …아. 저기, 으음, …응. "

 

 나는 잠깐동안 어쩌지, 하고 고민하다 아무러면 어떠냐는 생각에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에서 일어나 그녀의 몸을 껴안았다. 등 뒤로 와닿는 승아의 팔이 느껴졌다. 마주닫는 오른쪽 가슴에서 일정하게 뛰는 심장의 고동이 느껴진다. 따뜻하다. 나와 승아는 그렇게 한참을 아무말도 하지않고 온기만을 나누고 있었다.


 

***

 

 

 얼마나 지났을까, 등을 감싸고있던 팔이 떨어져나가는 것이 느껴지자, 나도 살며시 몸을 떼 그녀를 바라봤다. 눈이 마주친 짧은 순간, 그녀의 눈에서 미묘한 흐름이 흘러가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건 착각일지도 모른다. 나는 언제나 그녀를 다 아는것처럼 행동했지만 알지못했기에, 이번에는 내 마음대로 그녀의 기분을 판단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몸이 떨어지자 승아는 내 어깨를 살짝 밀어내며 이걸로 됬어. 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자. 이제 괜찮아. 나한테 하고싶은말이 있지?"

 

 이미 헤어지자는 선언을 들은 뒤였지만, 내가 이곳에 찾아온 근본적인 이유는 할말이 있어서였다. 내 앞에 드러내지 않는 그녀의 모습이 걱정되고 궁금하기도 했지만, 해야할말도 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눈을 지긋이 감으며 내 말을 경청해주려는 그녀의 모습을 보곤 후우, 하고 숨을 한번 고르고 입을 떼었다.

 

 "세번째 사건때였어. 그를 처음 만나게된건."
 "……."

 "처음에는 적대감이였어. 당연하겠지. 납치되어 들어가게된곳에 처음만난, 아니 분명 내가 쫒던 범죄자와 수갑으로 연결되어있는데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게 이상할거야. 하지만 나 혼자만의 힘으로 탈출은 무리인감이 없지 않아서 어쩔수 없이 함께 힘을 합쳐서 나가려고 했어. 살고싶었으니까. 그도 죄를 지었겠지만 살아가야하는거니까. 그 이상의 생각은 없었다고, 단정지었었지.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았어. 나는 어느새 그에게 향하던 공격적인 감정을 하나둘씩 무너트려가고있었어. 그리고 어느새 그 감정이 변환된걸 깨달았어. 승범씨가 내 안에서 너무 커져버린것같아. 어쩌면 너보다도…."
 "사랑해?"
 "아니."

 

 주어 없이 물어오는 물음이였지만, 그게 무슨뜻인지 알기에 담담하고 단호하게 부정의 말을 내뱉었다.

 

 "…아직은, 좋아하고있어."

 

 좋아한다는것과 사랑한다는것은 다르다. 가깝지만 다른 미묘한, 아직은 사랑보다는 좋아한다. 는 느낌일것이다. 사실은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뭐라고 정의내리기 어려운 감정이였다. 이런 이상하고 뒤죽박죽에 싱숭생숭한 대답이였지만 그녀는 이해했다는듯 웃었다.

 

 "아직은, 이구나."
 "응."

 

 그래. 아직은 그를 좋아하고있어. 좋아한다는 이 감정이 사랑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의 감정도 필요한것이다. 어쩌면 영원히 좋아하는것에서 정체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골로 내려가 가족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과의 접촉이 없던 공백의 시간동안, 많은 생각을 해왔다. 과연 이어질수 없는것, 오히려 아슬아슬하게 연결되어오던 인연을 한번에 끊어지게 해버릴지도 모르는 이 감정을 그에게 전해야하는걸까? 그저 이대로 머물러버리면 안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과거의 내가 떠오른다. 이대로 도망가버린다면 나는 모르는새에 누군가에게 또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정정당당하게 부딫히기로 마음먹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바에는 차라리 나의 이 감정을, 인연을 끊어내겠다.

 

 "이제 나가보고, 그를… 승범씨를 만나러 가보려고해."
 "…결전이구나."
 "그런걸까. 하하."

 

 서로 안면에 미소를 띄며 약간은 즐겁고 장난치는듯한 어조로 오고가는 대화이지만 즐겁기보다는 약간 어두운 느낌이 드는것 같았다. 그도 그럴게, 승아는 나와 헤어졌고, 헤어진 남자친구인 내가 그녀 앞에서 다른 좋아하는 사람 이야기를 한다는게 조금 미안해졌다. 승아가 껄끄러울것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을 잘 못하는걸 아는건지, 승아는 최대한 내가 자연스럽게 말할수 있도록 배려해주는것같았다. 그후 얼마간 더 소소한 대화를 하다가 앗, 하고 왼쪽 손목에 차고 온 시계를 봤다. 째깍이며 쉴새없이 움직이는 시계의 시침이 2를 가르키고 있었다. 슬슬 출발해야할 시간이다.

 

 "… 이제 가야할거같아, 승아야."
 "……."

 

 잠깐 나아지는듯한 분위기가 돌던 병실이 다시 어색함으로 물든다. 이제 이렇게 밖으로 나간다면 승아를 볼수없을거라고 생각한다. 다시 만나러 오기 좀 껄끄럽기도 하고. 보기 안좋겠지. 그럼 이게 마지막이라는건가.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들자 나가기가 아쉬워진다. 영원이 될 이별이라는것에 몸이 쉽사리 움직이지 않는다. 또다시 찾아온 침묵에 물먹은 솜처럼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하지만 그런다고 안나갈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느릿느릿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서 승아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살짝 몸을 돌려 그녀에게 경의와 안녕을 담아 목례를 했다.

 

 "…안녕."

 

 아마도 마지막이 될 인사를 너에게 전하며 뒤를 돌았다. 역시 아무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갑자기 전에도 이런일이 있었던것같다고 생각한다. 그래, 이건 마치 그떄같아. 승아가 실어증… 아니, 함묵증에 걸렸을때의 일과 비슷한것같아. 살짝 씁쓸한 미소가 지어진다. 사람의 체온이 느껴지지않는 차가운 문고리를 잡았다. 왼손으로 전해오는 차가움이 신경을 따라 흘렀다. 살짝 힘을 줘 문고리를 돌렸다. 끼익하는 소리가 들리고 열린 문밖으로 움직이지않는 발을 움직여 나아갔다. 그때 약간은 다급한듯한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태현아!"
"……?"

 

의아함에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자 울것같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승아의 표정이 보였다. 아, 대화하던 내내 웃는표정만 보여주던 승아의 모습과는 정 반대인 깊은 슬픔을 보여주는 얼굴에 몸이 굳었다. 나를 위해서 슬픈마음에 얇은 오블라토같은 표정을 덮어씌웠다는것을 이제야 알아차린 자신의 무감각함에 치가 떨렸다. 그녀에게 다가가 어깨를 토닥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몸을 돌려 병실로 발을 내딛으려는 순간 다시 한번 그녀가 말했다.

 

"이제는."
"…?"

 

더이상 접근하지 말고 거기서 들어달라는듯 다급하면서도 단호한 어투가 승아와 나의 사이에 선을 긋는것 같았다. 나는 아무말 없이 병실의 문턱 너머를 밟으려던 발을 다시 제자리로 옮겼다.

 

"더이상 뒤돌아보지말고, 앞을 보고 나아가. 태현아."

 

그녀가 하는 말이 꼭 이상황을 말하는것만이 아니라, 그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인것을 깨달고 조금은 착잡한 표정으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럴것이다. 그래야한다. 승아가 착잡한 내 표정을 보고 잠시 고개를 돌려 얼굴을 만지작거리더니 분위기를 바꾸려는건지 미소를 얼굴에 띄워보이며 조금더 밝아진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다음에는 애인을 소개시켜주러와!"
"…응."

 

이것이야말로 그녀의 배려. 놓기 싫었던 인연의 끈을 이어갈수있다는 허락을 받은것이다. 그 말에는 나 자신이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강하게 전해져오는 말에 눈을 감았다. 눈에서 뜨거운감정이 얼굴을 따라 흘러내리는것이 느껴진다. 그녀에게 너무 미안해서, 그러면서도 포기할수 없는 이 감정에 정신이 어질어질하다. 하지만 이대로 정신을 놓아서는 안된다. 결정한건 끝까지 지켜내보이겠어. 감고있던 눈을 뜨고 흐르던 눈물을 닦아냈다. 약해지면 안된다. 마음을 굳게 먹자.

 

"그럼. 나중에 다시 보러 올게."
"응. 잘가."

 

웃으며 손을 저어주는 승아를 뒤로 하고 병실문을 소리가 나지 않게 닫았다. 문을 나온 지금부터는 승아와 나는 친구라는 형태로 인연을 이어가게 될것이다.

 


***

 


컴퓨터잘하는 친구를 통해서 미리 구치소에 대해 조사하고, 미리 한번 방문해 신청서류를 내고 방문예약을 해놔서 면회는 바로 할수 있었다. 10분이라는 짧은시간. 그안에 모든 감정을 털어놔야한다. 그리고 끝을 맺어내야한다. 어떻게든 끊어낼 인연이라면 고백이라도 해서 답답한 마음을 풀고싶다는건 나의 너무 이기적인 마음일까.

 

소개된 방으로 들어가 문을 열자 영화같은곳에서 보았던것만 같은 유리벽이 보였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손도 잡을수 없도록 되있는 상태라 현실과 영화의 갭인가? 하고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딱히 손을 잡는등의 접촉은 불필요했지만 다른사람들의 경우에는 사소한것이지만 필요할지도 모르는데, 라는 생각을 하며 주위를 다시 자세히 둘러보니 마이크로만 대화할수있도록 되있는 시설이 있어 이걸로 대화하는구나. 라고 깨달았다. 교통순경은 구치소나 유치장같은것과는 거리가 멀기때문에 이런건에는 문외한 이 인것이다. 거기에 범죄자가 될만한 친구도 없어 방문할 일도 없었고. 처음이네요. 축하해요, 승범씨. 하고 작게 중얼거려봤다. 그의 반응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조금은 무거웠던 가슴이 가벼워지는것같았다.

 

혼자 생각을 하며 앉아있자, 유리벽 안쪽의 문이 열리며 여러명의 인영이 보였다. 다른사람이 함께 들어왔지만 어째서인지 시야에는 승범씨의 모습만이 담기는것같다.  두근, 그의 모습이 시야에 담기자마자 갑자기 심장의 고동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급하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듯한 행동에 당황스러웠지만, 이놈의 심장이라는게 자기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일수 없는 것이였기때문에 애써 가슴을 진정시키며 쉼호흡을 했다. 좀 진정된후 바라본 그는 상당히 귀찮지만 자신을 찾아온 사람이 있어서 나오는 것이라는듯한 여유가 담긴 표정을 짓다, 나를 발견하곤 놀라움에 물들어 눈을 크게 떴다. 주변을 휙 둘러보는것이 무슨 행동을 하는건지 알수없었다. 내가 면회온게 그렇게 놀랄일인가…? 이미 알고 있으셨을텐데. 살짝 알수없는 의문이 몸을 스물스물 잠식하였지만 알수없었기에 살짝 고개를 저으며 그런 감정을 털어냈다.

 

살짝 웃음을 띄우고 손을 흔들자, 그는 약간 못마땅하다는듯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승범씨."
 "…뭐야. 잔소리라도 하려고왔어?"
 
 시큰둥한 반응에 약간 실망스러운 마음이 드는건 어쩔수없었지만, 그래도 내가 면회를 왔다고 환하게 웃으며 기쁘게 반겨주는것도 …전혀 상상이 안가기때문에, 아니 오히려 소름이 돋을것같아서 그냥 웃으며 넘겼다. 이 짧은시간에 괜히 그의 나쁜 성질머리가 발끈할 말을 내뱉어봤자 이쪽이 할말만 제대로 못할 뿐이다. 그에게 고개를 저어보이며 말했다.
 
 "꼭 전하고 싶은말이 있어서 왔습니다. 들어주세요."
 "뭔데?"
 
 진지하게 말하는 내 표정이 효과가 있었던것인지, 시큰둥한 표정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뀌어있었다. 그리고 그안에는 뭔가 다른 감정도 담겨있는것같았지만, 나로써는 알수 없었다. 무슨말인지 들어줄 생각이 있다는 행동에 안도하고, 입을 열었다.
 
  "저, 방금 승아를 만나고 왔습니다."
  "…그래서? 자랑이라도 하시려고?"

 

 진지하게 말을 기다리다 뜬금없이 튀어나온 승아의 이야기 때문인걸까. 의아해하던 그의 표정에 약간의 비틀린 냉소가 혼탁하게 섞여들었다. 그런 말투라면 얼굴이 찡그려지기 싫어도 찡그리게 된다구요. 그러니까 당신이 무열선… 아니 형과 충돌이 일어나는거야.

 

 "그런거 아니니까 비꼬듯이 말하지마세요."
 "비꼰거 아닌데?"
 "…시간 없으니까 듣기만 하세요."

 

 지금 시간도 없는데 말대꾸는 꼬박꼬박 하시네 진짜, 기분이 나빠져 얼굴이 살짝 찌푸렸다. 그런 나를 아무말없이 지켜보던 그는 얼굴을 끄덕이곤 나를 쳐다봤다. 고개를 까딱이며 대답을 촉구하는 행동에 머리를 살짝 돌려 시야에서 승범씨를 벗어나게 해놓고 아까 하려던 말을 계속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헤어졌습니다."
 "……."

 

 승범씨는 의외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덕분에 다음 말을 꺼내기는 수월했다.

 

 "저는 승아에게 너무 큰 잘못을 했으니까요.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그저 입을 다물고 내 말을 들어주고있었다. 준비해오고 준비해왔지만, 정작 그의 앞에 서니 다음 말을 꺼내기가 꺼려졌다. 승아와 헤어지자마자 이런 말을 하는 자신을 어떻게 볼지, 그리고 내가 품고있는 용납되지 않는 마음을 듣고 그가 무슨 날카로운 말을 뱉을지, 두려웠다.

 

 가족과 지내면서,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과 떨어져 지내며 그동안의 자신을 다시 한번 뒤돌아볼수있었다. 다시한번 깨달은 그를 향한 감정에 뒤따라오는것은 자신에 대한 짙은 혐오감이였다. 나란 인간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내 자신이 정상범위에서 이탈한 이단아라는 생각에 정신이 어질거렸다. 여자친구도 버젓이 있는주제에, 자신에게는 과분할정도로 소중한 승아가 있으면서도 이런 마음이 드는 나 자신을 이해할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열심히 무시하려고 했다. 애써 신경을 다른곳에 집중시키기도 했다. 그런데도 머릿속에서는 끈임없이 그의 모습을 그리며 심장박동수를 미친듯이 높여갔다.

 

 결국 생각하고 생각해서 나온 결론은 그랬다. 나는… 남자인데도 불구하고, 동성인 승범씨를 사랑이라는 의미를 담아 좋아하고있다. 그것은 인정해야하는것이다. 그런데 중요한것은, 승아를 향한 감정도 여전히 건재하고있다는것이다. 그를 향한 만큼의 두근거림은 아니지만, 나를 받아주고 함께해준 소중한 연인이였다. 그리고 나때문에 상처까지 받았었던 아니, 지금도 현재진행형일지 모르는 상처를 받은 승아. 그녀앞에서는 나도 변함없는 죄의식이 스물스물 기어올라왔다. 그녀를 향한 사랑,죄의식. 다른 감정에 휩쓸려도 쉽게 물러지지않는 감정… 미묘하게 충돌하는 두명에게 느끼는 감정의 사이에서 혼란을 겪었다.

 

 외면하고 시야를 가리고, 뒤돌아서서 도망가도 결국은 결정의 순간까지의 거리가 바뀌는것 뿐이다. 차라리 초반에 잘라내버리는게 빠르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괴로운건 나 자신…. 그래서 차라리 두명 모두에게 내 감정을 털어놓기로 마음먹었다. 무모한 행동이다. 둘다 공존할수 없다고 해서, 하나만 남을수 있는경우만 있는게 아니다. 둘다 순식간에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게 지금의 자신으로서는 가장 최선의, 최고의 방법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국, 승아에게는 털어놓고 결국 연인의 관계는 잃었지만 그래도 인연의 끈은 끊어지지않았다. 내심 다행이라는 이기적인 생각을 했다. 이제 승범씨에게만 말하면, 모든것이 정리될텐데… 어째서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않는것일까. 승아때는 꺼려지기는해도 꽤 나쁘지않게 떨어지던 입이 그의 앞에 서니 입이 풀로 척 달라붙은듯 열수가 없었다. 승아와 나는 연인이라는 관계 아래에 오랫동안 함께하며 겪었던 일들과 일들을 지나오며 서로에게 쌓이는 믿음과 호감이 깔려있기에 이해해줄수 있을거라는 확신이 약간은 있었던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는 나를 이해해줄까? 그것은 장담할수 없는 일이다. 그에게 털어놓으면 그는 그나마 아슬아슬하게 이어진 인연을 싹둑, 하고 가위로 종이를 자르듯 간단히 끊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 한구석을 차지해서 쉽사리 말을 할수 없었다. 승아도 잃고싶지는 않았지만, 승범씨를 잃기는 더 싫었기에…

 

 내가 갑자기 하던 말을 멈추고 무언가를 말하기 꺼리는듯한 행동을 하는것을 보더니, 살며시 자신의 궁금증을 나에게 물어왔다.

 

 "근데… 그걸 왜 나한테 말하는건데?"

 

 …의외로 예리한 곳을 찔렸다. 그도 나의 이상행동이 눈에 훤하게 보일것을 망각해버렸다. 살짝 머리를 돌린 상태에서 눈치를 보듯 눈동자만 또르르 움직여 그의 모습을 살펴봤다. 무언가에 대한 해답을 갈구하는 모습이였다. 오른쪽 눈썹이 살짝 내려와 어떻게보면 짜증내는 모습이고 어떻게보면 답답하다는 말을 표정으로 나타내는것으로 보였다. 아니면 설마 …둘다인가?

 

 "대답 안해?"

 

 아, 둘다였구나.

 

 "…아, 죄송합니다."
 "사과는 됬으니까, 묻는말에 대답이나해."

 

 귀찮다는듯 손을 들어 설레설레 흔드는 제스쳐를 취한 승범씨는, 눈동자로 눈짓을 해가며 대답을 촉구했다. 이젠 침묵조차도 용납되지 않을 상황이기에, 승아에게 마음을 전하고 헤어졌을때부터 정해진 하나의 길로 가는수밖에 없음을 약간은 한탄하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건, 승범씨의 영향때문이기도 하니까요."
 "…뭣?! 그게 무슨소리야?"

 

 그는 쾅!하고 손바닥을 내리치면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유리벽을 깨부수고 넘어올듯한 아우라를 뿜어내며 내 말에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너무도 격한 반응이여서 오히려 이쪽이 당황스럽고 어디를 한대 맞은것처럼 얼빵해지는 느낌이였다.

 

 "왜 그렇게 흥분하세요, 승범씨?"
 "…아, 그게… 하하. 서로 좋다고 붙었던 사람들이 헤어졌다는데 그게 나랑 관련있다고 하니까 너무 놀라서 그런거지! 뭐 그런걸 가지고 꼬투리를 잡아! 소심해서는!"

 

 꼬투리 잡으려던건 아니였는데요…. 거기다가 누가 소심하다는거야!! 내 말에 적잖이 당황했는지 연하게 상기된 얼굴로 양손을 급하게 휘두르며 내뱉는 말에는 뭔지 모를 미묘한 감정을 애써 덮어두려는 어색함이 담겨있었지만, 너무도 열심히 대변하는 그의 모습에 뭐라고 지적하려던 말을 다시 삼키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걸 보고있던 승범씨가 금세 얼굴을 굳히며 나를 바라봤다.

 

 "…뭐냐. 그반응?"
 "아닙니다."

 

 그가 째려보는 시선이 얼굴에 콱콱 박혔지만 시선을 돌려 외면함으로 무시했다. 내 대답이 맘에 들지 않은건지 어느새 얼굴이 팍 일그러져있었다.

 

 "뭐냐 너. 애초에 뭐하러 온건지 이해가…. 아 진짜. 할말있으면 빨리하라고."

 

 승범씨는 화를 내다 그것도 귀찮다는듯 툭 내뱉고 자리에 다시 착석했다. 찡그리고 화내고, 이야기하는것으로 어느새 긴장감이 하늘위로 훨훨 날아간것만 같이 홀가분하다. 승범씨의 이런점이 좋다. 말투는 조금…이라고 해야하나, 어쨌든 나쁘지만, 그래도 의외로 서툴긴 하지만 지켜줄건 지켜주고 말이지. 꽤 매너있는건가. 아니 그래도 행동은 어린애같은면이 없진 않아서, 확실히 나보다 어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승범씨에게 방금 생각한 말을 전하면 또 화를 낼거같다는 생각이 들어 또 웃음이 난다. 아… 정말. 이런 당신을,

 

 "좋아합니다."
 "좋아하고 자시고 빨리 할말이나… 응? 어,어라? 뭐라고?"

 

 아무생각없이 비꼬려고 내 말을 기다렸던 승범씨는 말을 내뱉은후 이상한걸 깨달은듯 어이없다는 표정밑에 어떤 기묘한 감정을 깔고 나를 바라봤다. 어떤 감정인지 알기는 어렵지만, 저런 표정을 보니 새삼스레 웃음이 나서 살짝 웃어줬더니, 그의 고개가 무엇을 감추듯 갑자기 옆으로 돌아간다. 응? 뭐지? 내 웃음이… 그렇게 기분 나빴나? 설마 비웃은걸로 아시는건가?!

 

 잠깐 이어진 침묵을 깬것은 고개를 돌린채로 나에게 말을 거는 승범씨의 말이였다.

 

 "좋아…한다고?"
 "네. 좋아합니다."

 

 그렇게 들리는 그의 목소리는 강한 감정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잠시 또 입을 다물고 있다가 고개를 돌려서 내 눈동자를 직시해오며 조금은 정리된 목소리로 다시 한번 질문해왔다.

 

 "뭐…그건 니가 이 세계를 좋아한다던가, 그런거냐?"
 "…재미있어요?"
 "…그럼 뭐, 나를…좋아한다는건 아닐거아냐."
 "맞는데요."

 

 다시 한번 침묵. 그는 생각 외로 충격먹은 얼굴이라기 보다는 뭔가, 내 대답이 진실인지 확인하는듯한 표정이여서 약간은 의아해져 고개를 살짝 갸웃할수밖에 없었다. 이때쯤이면 무슨 반응이라도 있어야할텐데. 그저 조용히 내 눈을 응시해오는것이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것같다. 마치 좋아하는 이성에게 고백을 받았을때 하는듯한 행동같… 어?

 

 "승범씨."
 "왜."
 "왜 반응이 없어요?"
 "…무슨소리야."
 "뭔가 놀라시던가, 화를 낸다거나, 기분나쁘다던가. 그런반응이요."

 

 아니면 혐오한다는 표정이라던가, 더럽다던가. 그런 반응이 올지도 모른다고 적지않게 고민하고 말한거였는데. 오히려 아무말이 없으니 놀라울뿐이였다. 아니면 설마, 진지하게 들어주고있는건가? 승범씨라면 이런 감정따위는, 그냥 거절하고 빙글빙글 웃으며 약점을 잡았다는듯이 놀리거나, 예상치 못한 감정에 나를 약간은 밀어낼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드는건 떨쳐낼수가 없었다.

 

 "그럼 내가 무슨반응을 하기를 원하는데?"
 "네?"
 "응? 무슨반응을 원해? 대답해봐."

 

 어느새 평소의 페이스를 갖추며 비웃듯 한쪽 입꼬리를 올리는 그의 모습에 멍, 해졌다. 적반하장이네, 그런데 나는 무슨반응을 원했던거지? 아니, 무슨 반응을 원했다고 하기보다는… 그래. 그저, 보통사람들과 다른 반응이라고 생각해서 그런것뿐이였다.

 

 "딱히, 무슨 반응을 원하는건 아닙니다."

 

 저번일로 기대를 품어봐도 안되는건 결국 안된다는것을 조금은 깨달았거든요. …사람 마음이라는게, 마음대로 되는건 아니지만요.

 

 "하지만 제 생각과는 다른반응이여서 조금 궁금했을 뿐입니다."

 

 거짓말. 사실은 조금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애써 마음을 감추며, 입꼬리를 들어올려 얼굴에는 자그마한 미소를 띄우며 말하고 있지만 조금씩 얼굴이 굳어가는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승범씨는, ……지은씨 좋아하시잖아요?"

 

 그것이 진실. 승범씨는 이미 지은씨에게 마음을 빼앗긴것이 아닌가? 구치소에 갈때 당시, 그 …입술박치기도 시도하셨을정도니까, 이미 내가 파고들어갈 자리가 없다는것 정도는 알고있다. 차라리 깨끗하게 차이고, 이 마음을 곱게 접어서 미래에는 옛날 앨범을 꺼내 읽듯이 아, 이런 때도 있었지. 라고 웃으며 기억을 꺼낼수있게 되고 싶었다. 그런 미래가 올지는 알수없겠지만.

 

 말을 내뱉고 힐끗 그를 쳐다보자 어째서인지 얼굴이 똥씹은듯이 일그러져있었다. 설마 지은씨를 좋아하는걸 나한테 들켜서 그러시는건가? 승범씨성격에 남에게 그런걸 들키면 엄청 화낼것같기도 했다.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는게 정말 화가 많이 난것같아서 빨리 수습하기로 마음먹고 신중하게 말을 덮기로 했다. 살짝 얼굴을 돌려 눈동자만 돌려 힐끗힐끗 눈치를 보며 말했다.

 

 "저… 지은씨 좋아한다는건 비밀로 해드릴테니까 화내지마세…."
 "누가 그런 여자를 좋아한다는거야!!"

 

 갑자기 나는 큰소리에 놀란 표정으로 돌아보자 승범씨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채로 씩씩거리는게 눈동자에 비쳤다. 그렇게까지 부끄러워하시다니. 첫사랑이기라도 한건가? 그렇게는 안보였는데. 씁쓸하면서도 얼굴엔 약간의 미소가 얼굴에 떠오른다.

 

 "그렇게 부끄러워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들 알고있으니까요."
 "그런거 아니라고!!"

 

 흥분해 얼굴을 토마토처럼 붉히고 화를 분출하는 승범씨의 모습에 또 웃음이 난다. 또 이런면에서는 순수하신거같아. 킥킥 하고 소리내서 웃자 붉어진 얼굴이 더욱 새빨개진것같아 웃음이 멈추지가 않았다. 승범씨는 그런 나를 보며 손가락질을 몇번하며 큰소리로 화를 내다 잠시 잇새로 뭐라 내뱉고 자리에 앉았다.

 

 "이제 부끄러운거 좀 나아지셨습니까?"
 "시끄러워."

 

 웃음기 담긴 목소리로 놀리듯 던진 말인것을 깨달은것인지 승범씨는 듣기도 싫은듯 말을 뱉었다. 그렇게 웃고나자 갑자기 조용해진 분위기가 어색하게 느껴진다. 거기에 왜인지 모를 승범씨의 눈초리가 느껴져 뭐라고 할 말이 없어 고개를 푹 숙였다. 조용해지자 머릿속에서는 방금전의 고백이 생각나 부끄러워진다. 어떻게 그렇게 태연하게 내뱉은거지?! 그나저나 대답은?

 

 "저… 근데 대답은…."
 "시간 다 됬습니다."

 

 앗?! 웃으며 말하는 새에 벌써 시간이 흘러 그새 짧은 시간이 지나가있었다. 아쉽다는 감정이 온 몸을 타고 흐르는것같았다. 마음으로는 매일 매일 오고싶지만, 주변의 시선도 그렇고, 승범씨도 껄끄러워할것이 분명해서 약간 우울해진다. 그래도 가끔이라면 괜찮을까. 그나저나 아직 대답도 못들었는데… 하긴, 사귀지도 않을테고. 당연히 거절이겠지. 만나기도 싫어하실지 몰라….

 

 거절이라는것이 머릿속에 각인되고 나자 심장부위가 가시에 찔린듯 욱씬하는 고통이 오는것만 같았다. 이걸로 안녕을 고하게 되는걸까.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더, 얼굴을 보고싶었는데. 하지만 나의 이기적인 욕심으로 내 마음대로 더 버틸수있는것이 아니다. 물러나야할때인것이다.

 

 교도관이 승범씨에게 다가오는것이 눈에 비춰졌다. 이제 정말 끝이다.라고 생각한 순간 승범씨와 시선이 마주쳤다. 마주친 눈동자에서 느껴지는 흔들림에서 약간의 아쉬움이 묻어나고있었다. 이렇게 헤어진다해도 승범씨가 아쉬워해준다는것에 위안이 되는것이 어이가 없었다. 내 마음을 내 자신이 이해를 못한다는게 웃기기도 했다. 승범씨도, 나도 가고싶지 않다고 이곳을 지키고있을수는 없기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유리창 가까이에서 손을 까딱였다. 이쪽으로 잠시만 와주세요.

 

 그것을 알아챈 승범씨가 교도관분께 뭐라고 말하는것이 보였고, 이내 잠시 말하다 유리창 가까이로 다가왔다.

 

 "잘있으세요. 고마웠습니다."

 

 제 앞에 나타나준것, 나를 지탱해준것, 나와 함께 해준것, 그리고 고백을 들어준것까지 모두 다. 마지막 인사를 고한다는것을 깨달았는지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는것이 보였다. 그것을 보니 또 가슴이 욱신거리는게 느껴져 서있던상태 그대로 몇걸음 뒷걸음질쳤다. 그리곤 처음 들어왔을때처럼 웃으며 손을 저어줬다. 그는 뭔가 말을 했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이제, 가야지. 고개를 돌려 문을 나서려는 순간 쾅하며 꽤 세게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향해 반사적으로 얼굴을 돌리자, 다급하게 유리창을 두드리는 승범씨의 모습이 보였다. 놀란 교도관들이 승범씨의 팔을 잡고 나가려고 하고있었지만 애써 저항하며 나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그가 입으로 무언가 말하는것이 보여 최대한 입모양에 집중했다. 하지만 잘 알아들을수 없어서 살짝 얼굴이 찡그려졌다. 하지만 너무 간절해보이는 표정에 나도 모르게 한걸음씩 다가가고있었다.

 

 "…아해!"
 "네?"

 

 어느새 유리창앞에서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있었다.앞부분을 듣지 못해 무슨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고있자, 그는 주먹에 힘을 주고 약간은 얼굴을 분홍빛으로 물들이며 다시 한번 큰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좋아해, 류태현!"

 

 그의 말이 고막을 진동시키는 순간, 그대로 시간이 멈춘것같았다. 뭐라고요? 주먹으로 머리를 얻어맞은듯이 정신이 잠시 멀어져간것같았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승범씨를 바라보자, 그는 계속해서 내 얼굴을 보며 정신없이 내뱉었다.

 

 "좋아해. 좋아한다고… 전부터 좋아했어. 거짓말 아니야."

 

 목소리에서 전해져오는 미미한 떨림에 나도 모르게 꿀꺽, 하고 침을 삼킨것같다. 정신이 서서히 제 감각을 찾아오기 시작하자, 불수의근이 미친듯이 운동하며 자신의 존재를 상기시키기 시작했다. 좋아해, 라고 말할때마다 이렇게 격정적으로 뛰는 심장에 정신이 아득해지는것을 억지로 붙잡았다. 하지만 계속 어질거려 아무말도 못하고있자, 이내 승범씨가 옆에서 놀란듯이 서계시던 교도관 여러명에게 문 밖으로 끌려가듯 이끌려갔다. 그는 떠나가면서도 고개를 돌려 입모양으로 나에게 뭐라 말을 남겼다. 그리곤 나를 보고 씨익 웃어보이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무슨 말을 한거지? 굳어있던 머리를 운동시키며 곰곰히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승범씨의 모습이 머릿속에 각인된듯 자꾸 떠올랐다. 아무래도 무슨말을 했는지 알아차릴때까지 그 모습이 눈앞에서 가시지않을것같다. 계속해서 생각을 하다보니 문득 승범씨와 함께 했던 일들이 생각났다.

 

 처음만났을때, 목욕탕, 웨딩홀, VIP룸… 과거의 기억이 조각조각 찢겨져 수면위로 두둥실 떠오른다. 아직도 생생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약간은 희미해진 감각에 미안함이 느껴진다. 여러명의 사람이 눈앞에서 죽었는데도, 이리도 간단히 잊혀져가고있다는것. 그런데 그것이 그렇게 슬프지않다는것…. 나는 남들이 보는것보다 훨씬 속으로 썩고 이기적이고, 나쁜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몽글몽글 뭉쳐져 모른척하고 지나치기 어려운 자괴감이 눈에 띈다.

 

 하나 둘씩 떠오르는 아련한 모습에 약간은 애틋한 느낌이 드는것같기도 하다. 뭔지 모를 기묘한 기분에 언제나 그랬듯 하늘을 올려다본다. 라이트스카이블루빛의 하늘에 솜사탕처럼 크고 부드러워보이는 새하얀 구름이 자신의 몸을 한껏 펼쳐 발칙하게도 태양을 가리고 있었다. 그래도 조만간 태양이 새하얀 장막을 걷어내고 그 얼굴을 밖으로 빼꼼히 내밀것같다는 기분이 강하게 들었다.

 

 하늘을 멍하게 바라보며 곰곰히 생각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순간 파칭!하고 뇌에 전류가 흐른듯 강한 깨달음의 충격이 왔다. 모르는게 약이라지만… 알아버리고 나니 얼굴이 새빨개지는것은 불가항력이였다. 나는 그가 마지막으로 했던 입모양을 생각하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다시… 만나러 올거지…."

 

 바보같은사람. 내일도 만나러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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