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용혜진] 검은방

2013.02.25








 그녀는 때때로 꿈을 꿨다. 꿈에서 나오는 남자는 언제나 창백한 모습으로 차가운 입김을 내뿜으며 말하곤 했다.

 ‘제 안색이 그렇게 안좋나요?’

 축축한 물방울이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는 언뜻 보면 냉소를 짓는 것 같기도 했다. 아니, 그녀는 그를 이해할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하나는 알수있었다. 그녀가 아는 그는 냉소를 짓지 않는 사람이었고 짧은 시간의 만남에도 불구하고 남을 위하는 바보였다. 그러니 저것은…. 그녀는 아무말없이 그에게서 눈을 돌렸다.





 그녀의 기억이 가장 또렷하던 과거때부터 그녀는 깊은 잠을 잔적이 없다. 언제나 긴장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모를 사고에 대비해서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인간으로서의 본능이였다.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위해, 어떤것을 해야할지 몰랐고 결국 물살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부표마냥 흔들려다녔다. 남들의 ‘노리개’라는 비아냥도 썩 좋게 와닿지 않았지만 무시했다. 그들은 남의 반응을 즐기는 악질이니. 처음에는 톡톡 쏴봤지만 그게 부질없다는 건 금방 알수 있었다. 그녀는 하루하루 지쳐갔다.






 “제 인상이 그렇게 안 좋은가요?”

 좋지 않은 몸상태를 여실히 보여주는 질린 안색으로도 나를 향해 희미한 안도의 미소를 띄우며 그렇게 말했다. 그걸 보니 잠깐, 아주 잠깐 몸이 피로해져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금새 원상복구했다. 이런곳에서 틈을 보이면 버려진 말이 되버릴 뿐이니까.



처음엔 자그마한 가시였다. 심장을 찌르는 가시가 너무나도 거슬렸다. 그리 아프진 않지만 무시하기엔 존재감이 있는, 혜진은 순간 옛날에 들었던 한 이야기가 기억났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삼각형이 있다고. 그게 나쁜일을 할때마다 심장을 콕콕 찔러서 고통을 느끼게 하는거라고. 그것이 잠깐 혹시 자신에게도 아직 그 삼각형이 닳지 않았던건가, 라는 의문점을 낳았다. 하지만 그건 곧 지워졌다. 그녀의 삼각형은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닳다 못해 존재가 없어져버렸다. 그정도는 스스로 알 수 있었다. 그저….

 금새 사라질거라 생각했던 가슴을 찌르는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크고 억세게 자라났다. 갈수록 더욱 강하게 짓누르는 답답함이 호흡조차 어렵게 만든다. 숨통을 잡고 놓지 않는다. 알수 없는 고통이 잊혀지지 않아 그녀는 가끔 현실에서 눈을 돌렸다. 그리고 틈새로 그녀는 그의 모습을 봤다. 그녀는 그를 보며 자신의 주머니를 만지작대며 무언가를 중얼거린듯도 했다.

 귓가에 스며드는 목소리는 익숙했지만, 그 목소리에 담긴 감정은 생소했다. 그것에 거봐, 당신도 보통 사람이랑 다를게 없잖아. 라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났다. 가스가 새어나올때 그를 밖으로 밀어버린건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찌해도 죽을거라고. 그렇다고 해서 허강민을 간절히 살리고 싶어서 도운 것도 아니다. …우연히 그의 모습이 어쩐지 몇년 전에 봤던 누군가의 모습이 겹쳐보여서, 언제나 그랬듯 충동적으로 밀어냈을 뿐이지. 하지만 후회는 없다. 열리지 않을 벽을 쾅쾅 두들기는 허강민에게 빨리 가보라는 말을 했다. 당신은 아직 여기에 해야 할일이 남아있잖아? 입안에서 웅얼거린 말이 끝나자, 새삼스레 감각이 둔해지는게 몸으로 느껴졌다. 아, 정말로 죽는구나.

 처음엔 혀가 움직이지 않았다. 여전히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는데, 거슬리니까 좀 꺼지라는 말도 내뱉을수 없었다.
 두번째엔 코가 마비되는듯 했다. 호흡이 가빠와 인상이 찌푸려진다.
 세번째는 점점 주위가 어두워졌다. 눈은 분명히 뜨고있는데도 앞이 보이질 않는다.
 네번째는 몸의 감각이 무뎌져갔다. 문득 주머니를 만져보니 익숙한 감각이 잡히지 않는다. 떨어트렸나?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움직여 익숙한 감각을 찾아내 손에 꼭 쥐었다.
 그리고 이내 시끄러운 소리마저 사라진다.

 ‘제 안색이 그렇게 안 좋은가요?’

 분명히 귀도 멀어버린줄 알았는데. 어김없이 들리는 목소리와 모습에 이번엔 외면하지 않았다. 그리고 움직이지 않는 입으로 말했다. 과거로 돌아가서 당신을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어. 꼭 하고 싶은 말이 하나 있거든.

 그러나 그게 이루어질리 없다는 건 안다. 이게 끝이 아니라고, 사후세계가 있다고 해도. 그는 내가 떨어질 곳에 있을리 없겠지. 멀리 아득히 보이는 곳에서 그는 웃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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