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형, 무슨 일 있어?”
뭐? 차의 향을 맡던 와중 들린 소리에 미간을 좁히며 눈을 뜨자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묘한 표정을 짓는 눈앞의 동생의 모습에 입가에 가져갔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갑자기 무슨 소리지, 이글.”
“아니, 요즘 들어 형이 묘하게 멍하다고 할지. 반응이 느린 거 같아서. 무슨 일 있나싶어서.”
인상이 썩 좋지않다는 걸 눈치 챘는지 손을 가볍게 내저으며 당연히 빈틈이 있는 건 아니고 말이야, 그 특유의 분위기가 유들해졌다는 느낌이 들어서. 여자라도 생겼어? 하고 웃는 녀석의 얼굴에 잠시 손안의 차를 부어줘야 정신을 차릴까, 라는 생각을 했지만 고개를 저으며 손에 힘을 풀었다. 요즘 들어 쓸데없는 도발에 욱하는 일이 많아졌다는 생각을 스스로도 하고 있었기에 이글의 지적은 의외로 정곡을 찔렀을지도 모른다.
무의식의 영역이란 꽤나 무서운 법이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취한 행동들이 의식을 쥐어 잡고 흔든 다면, 그 이유도 모른 채로 끌려 다닌다면, 그걸 자각조차 못한다면 정말로 무서운 일이 된다. 그를 깨닫고 나면 이미 목 밑까지 물이 차오르고, 잡을 것도 없이 망망대해에서 버둥댈 뿐이겠지. 잡생각의 끄트머리에 떠오르는 금발에 탁자에 머리라도 박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눈앞의 동생이 꼬치꼬치 캐 물을 걸 생각하면 상상만으로도 치가 떨려 애써 꾹 눌러 참았다.
첫 만남이 썩 좋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장난이라도 치는 마냥 그 남자를 이상하게도 계속 마주쳤다. 조사를 마치고 돌아가던 길에 뒷골목싸움에 휘말린 상황에 마주친다거나, 이제는 익숙해진 외부생활의 짧은 휴식시간에 나간 가게주변에서 마주친다거나, 만날 때마다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그 특유의 말투는 둘째 치고 계속 웃는 모습 때문에 자신답지 않게 항상 화가 났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내가 하는 말만 들으면 피식피식 웃어대는 바람에 반박할 말도 하얗게 지워져 말을 얼버무리고 등을 돌리게 되어버린다. 막상 돌아오는 길에 대화를 떠올리면 경솔한 자신의 행동에 어이가 없을 지경인데도 어째서인지 그의 앞에 서면 정상적인 사고가 되지 않는 기분이 든다.
마치 무언가에 홀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홀린 것처럼. 내려놓은 찻잔에 남은 홍자가 눈에 들어왔다. 물의 표면에 반사되어 보이는 자신의 표정이 스스로의 얼굴이 아닌 기분이 들어 더 이상 이를 보고 싶지 않았다. 급격하게 드는 거부감에 찻잔을 멀찍이 밀어두자 이상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턱을 괴는 이글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 얼굴에 누군가의 표정이 겹쳐져 얼굴이 일그러지는걸 스스로 느꼈다. 이건 내가 아니야,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무슨 일 있구나? 도대체 누구야? 형을 그렇게 당황시키는 게. 뭐 어디서 예쁜 숙녀분이라도 만나셨나?”
“하, 그런 말할 시간에 얌전히 네 할 일이나 해라. 아직도 품위 없게 말하는 버릇은 못고쳤나보군.”
“형, 그거 알아?”
이미 자신의 몫을 비웠다는 듯 찻잔을 거꾸로 들고 가볍게 흔들어보이던 이글은 더욱 짙어진 미소를 지으며 찻잔의 손잡이에 위태롭게 검지만을 걸어두고 잔을 가볍게 흔들다가 다시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형은, 당황하면 보이는 모습이 큰형이랑 진짜 꼭 닮았어. 인상 찌푸리고, 반박하다가 결국 끝에는 말 돌리고. 외면한다고해서 다 되는게 아닌데 말이지. 아닌 것처럼 굴어도 형제인 티를 팍팍 내네. 형들은 그러니까 안 되는 거라니까.”
“이글.”
“와, 이것까지 똑같을 줄은 몰랐네.”
화나면 이름 부르는 거, 진짜 닮았어. 여전히 한 치의 일그러짐도 없이 환하게 웃는 모습에 할 말을 잃고 노려보자 가볍게 손을 흔들며 항복! 이라고 외쳤다. 여전히 분위기에 상관없이 한없이 가벼운 모습에 불쾌함이 솟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이글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휘파람을 불었다.
“그런 모습이 재밌긴 하지만 말이지. 궁금하긴 하단 말이야, 작은형까지 이런 모습을 보일 줄은 몰랐는데. 그 정도로 형의 약점을 찌르는 사람이 누굴까…….”
“……제발 시끄러우니까 입 좀 닥쳐라. 하다못해 조용히 차를 마시는 것까지 너에게 방해받고싶지않아.”
“네,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요즘 누가 자꾸 형한테 귀찮게 구나봐?”
평범하고, 오히려 좋은 쪽에 속했던 기분이 바닥을 뚫고 아래로 처박히는 것을 느끼며 마땅히 할 말도 없고, 대답하고 싶지도 않은 질문에 식은 홍자를 입으로 가져갔다. 거의 남지 않은 향과 씁쓸한 맛이 강해진 차의 맛에 더욱 기분이 하강하는 걸 느꼈다. 심장을 죄는 알 수 없는 답답함과 불쾌한 무게감에도 조용히 차를 마시는 모습을 지켜보던 이글은 나한테 털어놔봐, 다른 시선으로 보는 게 도움이 될 수도 있잖아? 하며 달콤한 속삭임을 하려 했는진 모르겠지만 아직 그 정도로 멍청해진 건 아니라 조용히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렸다. 무시하겠단 심산인걸 알았는지 입술을 삐죽거리던 이글은 뒤로 크게 기지개를 펴곤 요란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는 건가?”
“그래, 오랜만에 부르기에 무슨 이야기라도 들을까 싶어서 온 건데. 정말로 조용히 차만 마실 줄은 몰랐으니까.”
“뭐, 일단은 가족이니까.”
“언젠 가족취급도 안 해주더니.”
별로 오래 앉아있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힐끔 쳐다본 시계가 꽤나 시간이 지났다고 이야기하고 있어 고개를 끄덕였다. 일어난 자리에서 몇 번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털던 이글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도 뭐, 형이 그런 고민 하는 거 보면 사람이긴 한가보네. 누군가를 신경 쓰긴 하는 인간이었구나, 형이.”
“죽는다.”
“장난이야, 장난. 그래도 관심 있는 사람이면 한번쯤 찔러보지 그래? 받아줄지도 모르잖아. 얼굴도 반반하고, 집안도 좋고.”
“죽고 싶으면 죽고 싶다고 곱게 말해라, 손수 찔러줄테니.”
“까칠하긴, 난 이만 큰 형 괴롭히러 가봐야겠다. 슬슬 마칠 시간이기도 하고.”
잘 있어! 철그렁하는 발걸음을 옮기며 손을 흔들어 보인 이글이 사라진 방안은 모든 소리가 사라져 귀가 먼 느낌이 들게 했지만, 그를 메우듯 일정하게 들리는 째깍 이는 시계소리가 들려왔다. 째깍, 째깍. 그 소리를 듣고있자니 점점 마음이 가라앉는 느낌이 들어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그제야 벌써 어두워진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옅은 구름이 낀, 그리고 밝게 빛나는 보름달. 문득 그를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올라 인상이 찌푸려졌다. 또 툭하면 떠오르는 얼굴에 입술을 깨물었다. 이쯤 되면 진짜 미친 것 아닌가 싶게 되는데. 차라리 잠이라도 자야겠단 생각에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한참이나 뒤척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호엑
앞으로 더 적는다고해도 애정전선을 위한...떡밥을...걸어두고싶었...을..뿐이야....(슬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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